안중근,100년 만에 조국 땅 딛고 하늘 보시다
<기고> 안중근청년아카데미지도위원장 이승희 전 의원
 
이승희
▲  안중근 청년아카데미 지도위원장 이승희 전 국회 의원   ©단지12 닷컴
긴 여정을 마치고 안중근장군의 現身이 조국 땅에 우뚝 섰다.
 
국회 내 헌정기념관에 임시로 세워진 동상은 하얼빈을 중심으로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크나큰 애국심으로 작은 정성을 모아 장군의 거사지에 세워졌으나 11일 만에 철거당하는 고초를 거쳐 드디어 조국 땅을 밟으셨다.  

물론 하얼빈에 세워졌던 이 동상이 안중근의 유일한 동상은 아니다.
그러나 안중근 장군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아니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의 민속의식에 따라 장군이 사형이 선고됐던 법정 그 자리에서 진혼제를 통해 장군의 혼을 담은 유일한 동상이다. 또한 이또오 히로부미의 저격 후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다.” 라는 외침대로 장군이라 불릴 최초의 동상이다. 

긴 여정을 위한 나무상자를 개봉하고 우리 땅에 우뚝 선 장군의 동상을 보고 뇌리에 압도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는 ‘畵龍點睛’(화룡점정)이다. 평소 미술작품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많은 작품을 보았으나 장군의 동상에서 표현된 눈은 새로운 경지였다.
대부분의 동상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큰 어려움은 눈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이다.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근육을 아무리 정교하게 표현해도 눈에서 막히고 만다. 때문에 예술행위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과정을 ‘화룡점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얼빈에서 온 장군의 동상은 양각이 아닌 음각을 통해 깊고 형형하게 살아있는 눈을 재현했다. 살아생전 민족과 함께 겪었던 장군의 고난도, 건립 장소문제로 이 시간까지 겪으시는 고초도 어쩌면 자기들 것으로만 가득 채우려고 하는 집단적 이기심이 원인 임을 일깨워 주듯이 장군의 눈은 비움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인류의 평화를 갈망하는 열린 마음으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던 장군의 풍모를 부족함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예술적 깊이 또한 銅像이면서, 動像으로 현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名不虛傳이라더니 오늘날 ‘하얼빈 빙등축제’를 세계인이 참여하는 행사로 만들어낸 ‘하얼빈공대 양세창교수’의 깊이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역사성과 더불어 작품성도 만만치 않은 이 안중근 장군의 동상은 중요한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하얼빈에 건립 당시 많은 분들의 정성이 모여서 이루어졌듯이 서울에 세우는데도 많은 분들의 정성이 모여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둘째, 유해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고혜선 전주대교수의 진혼제를 통해 장군의 혼을 담은 유일한 현신이다.

셋째, 장군이 재판과정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했던 의사가 아닌 군인으로써의 안중근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규정하는 동상이다.  

거사 후 민족의 영웅 안중근장군은 우리 민족을 넘어 아시아인들의 존경을 불러 일으켰으며, 현재에도 양세창교수의 작품으로 재탄생했듯 한국과 중국이 협력하는 기초의 일단을 만들어놓고 가셨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임시로나마 현재의 위치에 모시기까지의 과정은 다시 입에 담고 싶지 않을 정도이니, 100년 만에 조국의 땅을 밟고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하늘을 보시는 장군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장군의 뜻을 널리 이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영구건립하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많은 난관에 봉착할까. 그러나 안중근청년아카데미는 좌절하지 않고 안중근장군의 정신으로 관철해낼 것을 믿으며 동상을 떠나온다. 

2009년 9월 5일
안중근청년아카데미지도위원장
이승희(전 국회의원)

기사입력: 2009/09/05 [23:03]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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