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향한 안중근 의사의 외침
안중근 동양평화론의 고찰 및 현대적 재해석
 
조승우/연세대학교
▲  중국 여순 감옥   ©단지12 닷컴

1. 서론- 역사적 배경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곱 발의 총성이 울린다. 그곳에는 굳은 표정의 한 사내가 서있다. 선두의 노인을 향해 네발을 발사한 뒤 침착하게 주위 일본인들을 향해 세 발을 쏜다. 백발의 노인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이내 죽음을 맞이한다. 그 백발의 노인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안중근의사는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과 관련해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인류공동의 번영을 위한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는 당연히 사라져야 할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은 안중근의사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사형 언도한다.

 안중근의사의「동양평화론」저술은 6회에 걸친 재판과정을 끝내고 여순 지방법원 법정에서 사형언도가 내려진 뒤부터이다. 즉 1910년 2월 14일 사형언도 후 형의 집행만 남은 상태에서 먼저 3월 15일「안응칠역사」라는 개인 전기를 탈고한 후 순국한 3월 26일 사이인 11일 만에 서문과 전감 일부분만 기술한 미완성 작품이다.「안응칠역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만일 허가될 수 있다면 동양평화론 1책을 저술하고 싶으니, 사형집행 날짜를 한 달 남짓 늦추어 줄 수 있겠는가" 했더니 고등법원장이 대답하되 "어찌 한달 뿐이겠는가! 설사 몇 달이 걸리더라도 특별히 허가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 하므로 나는 감사하기를 마지못하고 돌아와 공소권 청구할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일제 당국은 선고일로부터 불과 한 달 여 지난 동년 3월 26일 사형을 집행한다. ‘평화’에 대한 자신들의 논리적 모순이 들춰지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안중근의사의 평화를 향한 미완결의 외침. 지금부터 펼쳐진다.
 
2. 동양평화론

 "성패는 만고에 항상 정해진 이치이다. 오늘날 세계는 동서로 갈라지고, 인종이 각각 다르며, 서로 경쟁하기를 밥 먹듯 하며 이기(利器)연구에 농상보다 더욱 열중하여 새로 전기포(電氣砲), 비행선(飛行船), 침수정(浸水艇) 등을 발명하고 있으니, 이것들은 사람이나 사물을 상해하는 기계들이다. 젊은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에 몰아넣어 수 없는 귀중한 생령들이 희생물처럼 버려져, 피가 내가 되어 흐르고 시체는 쌓여 산을 이루어 그칠 날이 없다."
 동양평화론의 서(序)는 위의 내용으로 시작한다. 안중근 의사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있어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 속에 국제사회가 자국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여 약소국을 제물로 삼는 시대적 상황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 인류의 공동번영이란 대전제가 되는 가치들은 무시한 채 전쟁이란 폭력적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 무기 개발에 열중하던 시대상황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성과 폭력성을 규탄하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국가가 제정러시아라고 지적한다. 안중근의사의 사상을 대표하는 동양평화론 에서 그가 강조하는 중심 내용은 크게
 첫째, 동북아 공동안보체제 형성과 국제 평화군 창설
 둘째, 동북아 개발은행 설립과 공동화폐 발행 사업 추진
두 가지 이다.
 
2-1. 동북아 공동안보체제 구상

 당시 일본이 강점하고 있던 여순 지역은 동북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20세기 초 여순은 러시아의 해양 진출 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 침략 거점이었고, 중국 역시 구 만주지역의 전체 향방과 맞물려 여순 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인 지역이었다. 안중근의사가 여순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거점으로 삼자고 한 이유는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 관리함으로써 동북아 평화와 연대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국에 대한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 중과 호혜적 관계를 정립하고 동북아 평화를 확립해야할 필요가 있었는데 안중근의사는 일본에게 여순을 다시 중국에게 돌려주고 이곳에 한, 중, 일 삼국의 대표로 이루어진 (동양)평화회의를 설치하자고 제안한다.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자면 ‘동북아 공동안보회의’인 셈이다.
 
2-2 동북아 경제협력 구상

  안중근의사는 한국과 청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재정부족이라는 경제적 문제 때문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은 재정이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어서 재정난을 청과 한국 두 나라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 이라고 이해하고 일본의 재정난을 일본만의 문제로 방치해둘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인 한국과 청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간주하였다. 해결책으로 한, 청, 일 3국이 조직한 동양평화회의에서 회원국 수억 명의 국민들로부터 1원씩 모은 것을 자본으로 은행을 서립하자고 제시하였다. 즉, 은행을 통해 공동 화폐를 발행하여 신용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창출된 신용과 공동 화폐는 일본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리고 경제를 살린 일본이 한국, 중국과 긴밀히 경제협력을 추진해가면 동양 삼국에서 함께 상공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최근에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동북아 개발은행 설립이나 한중일 공동화폐 발행을 안중근의사는 이미 백여 년 전에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3. 동양평화론의 의의

(1) 이토 히로부미의 ‘극동평화론’과 안중근의사의 동양 평화론

  안중근의사의 주장이 일본에 너무 호의적인 것으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재정문제 때문에 이웃 나라를 침략하기에 이른 일본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구상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20세기 초 한일 양국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침략적인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가 연대해야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도 나름대로의 동양평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극동평화론’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엄청난 위험이 숨어있다. 어느 나라를 중심으로 뭉칠 것인가, 즉 어느 나라가 중심 국가가 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토의 주장은 일본이 허브국가의 역할을 할 터이니 일본을 위해 한국과 중국이 희생을 감수하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안중근의사의 ‘동아시아 연대론’은 허브, 즉 중심 국가를 부정하고 한중일 삼국이 평등한 관계에 있는 ‘수평적 연대’의 논리이다. 앞으로 한국이 앞장서서 군축, 공동개발은행설립, 공동화폐발행, 공동 기술 인프라 구축 같은 주장들을 해야 할 것이다.

(2) 신 냉전구도의 동아시아 상황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이 치열하다. 미국이 진행 중인 병력 재배치의 속내는 지금까지의 동북아 패권에 효율성까지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재적 주적’인 중국을 겨냥하여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면서 주한, 주일 미군의 작전지역을 은근히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야망도 만만치 않다. 단적인 예가 북핵 6자회담에서 핵심적 역할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의 안간힘이다. 중국은 6자회담 사무국을 북경에 두고 싶어 한다. 아편전쟁 뒤 중국이 처음으로 국제관계를 주도하는 셈이다.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북핵을 빌미로 군비를 늘리며 평화헌법을 개정할 준비를 완료했다.

  남북한과 일본을 가운데 두고 중국, 러시아, 미국이 둘러싸고 있는 이 동북아 지역에, 앞으로 상황에 따라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다시 충돌하는 ‘신 냉전구도’가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에서 호혜적 협력과 평화체제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시점이다. 이미 백여 년 전에 ‘동북아의 수평적 연대’를 꿈꿨던 안중근의사를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현실

4-1. 현실주의적 설명

(1) 안보위협이 상존하나 안보 공동체가 미비하다. 현실주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제 공동체는 안보 공동체 속에 내재될 경우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2) 미국의 반대를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 통합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적 세계화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3) 동아시아에서 국가 주권에의 집착이나 민족주의가 여타 지역과 비교해서 상당히 강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유럽이 높은 수준의 지역통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국가 주권 개념을 순화시키고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을 버렸기 때문이다.
  현실주의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는 다극적 세력균형 상태에 있기 때문에 지역 통합이나 제도적 통합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지역 안보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 그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4-2. 기능주의적 설명

(1) 동질성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기능주의적 접근법에 의하면 지역통합은 동질적인 사회 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지역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하고 사회, 정치, 경제 면 모두에서 국가 간의 이질성이 매우 높다.
(2) 초국가적 이해집단이 부재하다. 초국가적 자본가 세력이 상당히 약하다. 일본 자본가들은 자기민족 중심적이고 배타적이며, 화교 자본은 가족 중심적이며 배타적 속성이 강하다. 일본 자본가와 화교 자본가 사이의 상호관계도 협조적이기보다는 경쟁, 대립적인 측면이 훨씬 강하다. 일본 정부의 지휘 아래 계열기업군이 중심이 되어 유기적인 공급자 망, 공급자 협력클럽, 종합상사 망 등을 수립하고 사적인 제도적 장치들을 성공적으로 운용해 왔다. 이러한 비공식적 제도나 임기응변적 조치들은 일본의 공식적 제도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킨다.
(3) 법적, 제도적 수단이 필요 없어서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미국시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법적, 제도적인 수단을 통해서 경제거래가 야기하는 제반 문제를 개별국가간의 생산, 판매, 투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해결할 필요성이 감소한다.
5.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동향
(1) 미국의 정책변화 ; 미국의 상대적 힘이 변한 것이 아니라 힘의 행사 방식이나 미국이 지역주의를 보는 시각이 변했다. 미국도 NAFTA 출범을 통하여 지역주의의 필요성을 인정한 상태이고 동아시아 지역주의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침범하지 않는 다자주의의 한 단계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경제위기 ; 경제위기는 통화문제를 공동 관리하기 위해서 집합적 행동을 할 필요성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현재 동아시아에서 지역협력이 가장 발전된 부문이 금융통화 부문이다. IMF의 부당한 구조조정 등 불평등을 극복하고 외부 차관 의존도를 낮추자는 공동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였다.
 
6.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전망

(1) 통화협력 ; 동아시아 공동체를 목표로 하는 다양한 구상들이 정체상태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통화협력은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금융문제가 경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통화 협력이 진전이 있을 수 있었던 배경은 국내 정치적으로 강력한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7년 9월 동아시아 위기의 재발방지를 위해 AMF를 추진하자고 제안하였다. AMF 추진은 동아시아 국가 사이에 정책을 협의하고 국제 금융투기 자본에 대한 감시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것이 IMF에 기반을 둔 국제 금융체제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즉각 거부하였다.
 
(2) 쌍방의 자유무역협정 ; 자유무역협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02년 1월 일본과 싱가포르 사이에 동아시아 국가 간에는 최초로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변화는 북미에서 지역통합의 본격화를 가져온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급격한 정책변화와도 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NAFTA의 배경에는 미국의 지역통합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변화한 점과 멕시코가 기존에 라틴아메리카 대동단결과 지역통합이라는 대의명분으로부터 이탈했다는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멕시코의 이탈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충격파였고 싱가포르는 ASEAN 내부의 보호주의 성향 때문에 무역자유화와 시장통합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타개책으로 자유무역협정을 택했다. 중국과 ASEAN사이의 자유무역협정도 싱가포르의 정책변화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그리고 일본-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은 역내 국가들로 하여금 각기 자유무역협정을 적극 추진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이는 지역 전체의 통합을 가져오는데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7. 우리나라의 대응전략

(1) 동북아 물류 중심지화 ; 중국경제의 급부상은 한국경제에 기회이자 위협 요인이다. 특히 중장기적으로 수출 주도 및 제조업 중심의 발전 전략은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한국 경제를 떠받쳐 온 제조업 경쟁력은 조만간 중국에 밀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중국 경제 부상을 기회로 삼아 적극 활용하려는 전략이 필요하다.

(2) 동북아 에너지 협력 ; 동북아 지역은 북미, 남미, 유럽 등 여타 지역과는 달리 역내 국가들이 각각 독립적이고 단절된 독특한 지역 에너지 수급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역내 국가 간 에너지 교역을 위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등의 인프라가 부재하다. 또한 에너지의 수요 증가율은 엄청나지만 에너지 공급망은 취약하기 때문에 유럽과 북미 지역에 비해 높은 단가로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북 에너지 협력도 절실하다. 남북 에너지 협력이 이루어지면 동아시아의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3) 금융 산업 선진화 ; 전 세계 GDP대비 금융 산업의 비중은 2000년 21%에서 2020년 30%로 증가할 전망이다. 막대한 금융수요를 활용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 자체의 성장은 물론이고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을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금융업의 성장으로 연계 성장 할 수 있는 비즈니스 서비스업 등의 성장을 위하여 금융 산업 선진화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금융 산업 비중은 3.6%(2000년)으로 일본 7.3%, 미국 9.7%, 프랑스 12.7%에 비하여 크게 낮다.
 
8. 결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은 뤼순감옥으로 압송된다. 재판에서 안중근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의 거사는 나 일개인을 위해 한 것이 아니고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다.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 천황의 선전조칙(宣戰詔勅)에 의하면, 러일전쟁은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다는 것이었다.”

 안중근의사는 언제나 ‘동양평화’라는 대의를 잊지 않았다. 안중근의사의 평화론은 보편적 도덕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고 각국이 독립적 주권을 가진 상태에서 서로 연계하여 평화를 이룩하자는 생각이었다. 그의 깊이 있는 사상과 인도주의적, 보편 도덕적 가치에 일본인들도 존경을 표하고 있으며 지금 일본에서 일고 있는 안중근 추모운동 또한 안중근의사의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또한 동양 평화론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신독트린 개념과도 맞물려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물론 그의 다자 안보론에 대한 엇갈린 의견들이 난무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가 앞으로 이룩해야 할 장기적인 틀의 구축을 위한 의견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동양평화론 전감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오호라! 자연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동종인방을 해치는 자는 끝내 독부의 환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는 같은 황인종이면서 한국을 침략하여 지배하려고 한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침략정책을 전면 공격하여 언젠가는 그 값을 치를 것이라고 강하게 논하였다. 비단 그 당시의 일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도 국가 간에 수없이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희생시키는 경우도 많다. ‘자연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은 자는 끝내 독부의 환을 면치 못하리라’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중근의사, 그는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의사, 열사일 뿐만 아니라 평화를 외친 뛰어난 사상가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안중근의사’ 와 ‘동양평화론’ 을 재조명 하는 이유는 시대를 뛰어넘는 ‘평화’를 향한 그의 외침 때문이다.



기사입력: 2007/05/08 [16:44]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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