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북간도를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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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을 하기로 작심한 안의사가 그 전쟁준비를 하는 동안 학교를 두개나 세워 영재들을 양성하고, 국채보상회 관서지부를 맡아 의연금을 모금하는 일에도 적극성을 띤 사실은익히 잘 알고 계시지요?
 
이때 벌써 한국은 일제치하나 다름없어 안의사가 이 일로 인해 일본순사에게서 조사를 받고 일본 순사와 서로 치고 받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순사 : 회원은 얼마이며, 재정은 얼마나 거두어졌는가?
 
안의사: 회원은 2천만명이요, 재정은 1300만원을 거둔 다음에 보상하려 한다.
 
순사: 한국인은 하등(下等) 사람들인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안의사: 빚을 진 사람은 빚을 갚는 것이요, 빚을 준 사람은 빚을 받는 것인데 무슨 불미한 일이 있어서 그같이 질투하고 욕질을 하는 것인가.
 
이에 순사가 성을 내며 안의사를 치며 달려 들기에,
 
안의사: 이와같이 까닭없이 욕을 본다면 대한 2천만 민족이 장차 큰 압제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찌 나라의 수치를 달게 받을 수 있을 것이냐.
 
하면서 발분하여 서로 같이 치기를 무수히 하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애써 말리는 바람에 겨우 끝이 나 헤어졌습니다.
 
 
그때 (1907년) 이등박문이 한국에 와서 7조약을 강제로 맺고, 고종을 폐하고, 병정들을 해산시키자, 2천만 인민이 일제히 분발하여 벌떼처럼 일어나 삼천리 강산에 대포소리가 펑 펑 하고 크게 울렸습니다.   국채보상운동으로 모금한 돈도 공중증발 되어버리고 책임소재도 밝힐 길이 없고...순 개판이 되어버린지라... 
 
 (이른바 정미7조약이란 1907년에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기 위해 강행한 마지막 조치이다. 헤이그밀사사건을 트집잡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킨 일본은 허울만 남은 대한 제국을 말살하기 위하여 법령제정권, 관리임명권,행정권, 일본관리의 임명 등 7개항의 조약만을 제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이완용과 이등박문사이에 조인되었다.
 
 이리하여 일본은 국내 통치권 즉 행정실권을 장악, 한국인 대신 밑에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고, 경찰권을 위임받아, 군대를 해산시키고, 언론을 탄압하여 1910년 8월22일 마침내 대한제국의 국체를 말소시키고 한일 합방을 성사시켰다. 외교사에는 한일신협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일합방조약 또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찌 마사다께(寺內正毅)사이에 조인되었으니, 재수없고 나쁜 일은 이완용이 도맡아서 했다. 이완용은 1920년 일본의 후작지위도 하사받고 1926년에 죽을때까지 일본의 개노릇을 했다)

 
 
대포소리가 삼천리를 진동하자 안의사는, 드디어 때가 왔다, 평화는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적과의 목숨 건 전투뿐이라고 판단, 급급히 행장을 차려가지고 가족들과 이별하고 북간도를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거기에 도착하니 그곳에도 또한 일본 군인들이 와서 주둔하고 있어서, 도무지 발 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너달 동안 만주 각 지방을 시찰 한 다음, 러시아 영토로 들어가 연추(煙秋)란 곳을 거쳐, 블라디보스톡(해삼위)에 이르렀습니다.
 
그 항구안에는 한국인이 4,5천명이나 살고 있었고, 학교도 두어군데 있고 청년회도 있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그칩니다. 다음에 또 이어집니다. 

기사입력: 2009/01/03 [19:05]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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