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대한독립운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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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사가 상해를 떠나 평남 진남포에 돌아와 집안소식을 알아 본 즉 그동안에 가족들이 이미 청계동을 떠나 진남포에 도착했는데, 다만 아버지가 중도에 병세가 더욱 중해져서 마침내 세상을 떠나셨고 가족들이 아버지의 영구를 모시고 도로 돌아가 청계동에서 장사를 치렀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우리 안의사 통곡통곡하여 몇번이나 까물어쳤습니다.다음날 길을 떠나 청계동에 이르러 상청을 차리고 재계를 지킨지 몇날 뒤에 상례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그해 겨울을 거기서 났습니다.
 
이때 안의사는 아버지 산소에 엎드려 대한독립에 한 목숨바치겠노라.그때까지 술을 끊겠습니다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제 드디어 안의사의 독립전쟁 출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안의사가 어떻게 독립전쟁을 시작하셨나 그 처음은 다음과 같습니다.부친이 별세한 다음해 (1906년) 봄(3월)에 안의사는 먼저 가족들을 데리고 청계동을 떠나 진남포에 이사해 살면서 양옥 한채를 지어 살림을 안정시키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남은 재산으로는 두 곳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삼흥학교요, 또 하나는 돈의학교로서 안의사 자신이 교무를 맡아 수업을 주관하셨습니다.
 
재주가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하여 직접 교육을 하신 것입니다. 
필자가 학창시절에 참으로 감명깊은 책이 심훈의 상록수입니다. 채영신이란 아가씨와 박동혁이란 총각이 연애하는 내용은 별로인데, 촌 아이들이 죽자 살자 배우려 드는 태도에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던지...    
 
 
쓰러져 가는 예배당에 콩나물 시루같이 모여 한 여름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마치 기걸 들린듯이 하급반 애들이 목이 터져라,  
<가>자에 ㄱ 하면 <각>하고, <나>자에 ㄴ하면 <난>하고 하면서, 다리도 못뻗고 들어 앉은 아이들이 고개를 반짝들고 칠판을 쳐다보면서 제비주둥이 같은 입을 일제히 벌렸다 오므렸다 합니다.
 
 그러면 상급반 학생들은 <농민독본>을 펴놓고, "잠자는 자 잠을 깨고 눈먼자 눈을 떠라. 
 부지런히 일을 하여 살길을 닦아보세. 하며 목청이 찢어져라고 선생의 입내를 내었습니다.
 
그 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면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지만 멀리 축동밖에서 들을 때면 "아아, 너희들이 이제야 눈을 떠 가는구나!" 하며 영신이 어깨춤이 저절로 났다 합니다. 
 
 
우리 안의사의 감개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오냐 내 기필코 대한 독립을 이루고야 말리라 . 실력을 길러 반드시 자주 독립하리라 하고.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에 두 주먹이 불끈 불끈 쥐어졌을 것이고, 그 입에서 애국 충정의 가르침이 사자처럼 포효하셨슴이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독립전쟁의 초석을 다지는 중에, 그 다음해 (1907년)봄에, 뜻밖의 일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어떤 도인(道人)의 방문을 받게 된 것입니다.  

기사입력: 2009/01/03 [18:54]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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