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하얼빈 독립특파작전'
<특별기고> 100년 만에 안중근의 호칭을 다시 생각한다
 
정광일
안중근청년아카데미가 안중근의 호칭을 '안중근 의사'에서 '안중근 장군'으로 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한지 2년이 지났다. 그 덕분에 인터넷에는 안중근 장군이라는 단어가 제법 늘었으나 이것은 전체 호칭의 1%도 안된다.
우리는 지난 99년 동안 '안중근 의사'라는 호칭을 자랑스럽게 사용해 왔기 때문에 안중근 장군이라는 표현은 어색하기만 하다.
 
▲  25일 안중근평화마라톤 대회에서는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대신 "대한의군 안중근 장군  하얼빈 독립특파작전 99주년 기념" 안중근 평화마라톤이라고 쓴 대형 현수막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 단지12 닷컴

지난 25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에서 인터넷신문 네이션코리와와 함께 주최한 '안중근 평화마라톤'을 준비하면서 행사를 기획했던 필자는 또 하나의 새롭 어색한 호칭을 만들어야 했다.
'안중근 장군 하얼빈 의거 99주년 안중근평화마라톤'을 '안중근 장군 하얼빈 독립특파작전 99주년 기념 안중근평화마라톤'이다.하얼빈 '의거'를 하얼빈 '독립특파작전'으로 변경한 것이다.
 
안중근의 호칭을 '의사'에서 '장군'으로 하는 것이 맞다면 하얼빈 '의거' 를 하얼빈'독립특파작전'으로 변경하는 것이 맞가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닌 장군이 맞다면 99년전 안중근의 하알빈 의거는 '의거'가 아닌 '군사작전'이란 의미다. 군사작전에서 의거란 표현은 없다.
 
안중근 장군은 하얼빈 작전 이후 일본 법정에서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독립특파대장 안중근'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한 작전을 기획하고 직접 작전지역에 투입된 하얼빈 작전의 총책임자인 대장이란 뜻이다.
 
안중근은 1909년 2월, 여순감옥 인근에 위치한 당시 일본법정(여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자신이 이등박문을 죽인 것은 조국의 독립전쟁에서 적장을 사살하고 체포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을 만국공법(국제법)에 의해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은 안중근의 이같은 주장을 묵살했다. 군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중근이 여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당하던 날, 사형집행장으로 떠나기 직전에 쓴 마지막 붓글씨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다.
안중근을 '의사'로 부르지 말고 '장군'으로 불려야 한다는 논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안중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으로서 당연한 의무'라는 글을 생의 마지막 글로 남기고 1909년 3월 26일 오전 순국했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던지는 것은 당연한 군인의 의무'라고 군인의 본분, 즉 군인의 의무를 정확하게 규정한 안중근의 호칭을 군인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인은 절대로 의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중근의 호칭을 장군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도 많다.  장군으로 호칭해야 한다는 논리가 틀린 것은 결코 아니지만 지난 100년 가까이 사용해온 안중근 의사라는 국민적인 호칭을 갑자기 안중근 장군으로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장군' 보다는 '의사' 가 훨씬 더 영웅스럽고 거룩한 민족적인 호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99주년 기념식해군 참모총장 명의의 추모회환© 단지12 닷컴
▲  안중근 의사 추모행사에는 언제나 군 관계자들의 추모회환이 등장한다.   © 단지12 닷컴
대한의병 참모중장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제거하기 위한 독립특파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연해주 발 하얼빈행 기차를 탈때는 이미 대한제국의 군대는 일본에 의해 해산 된 뒤였다.
안중근이 조국을 떠나 연해주로 건너 간 시기와 이유도 일본이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07년 일제가 고종을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해산시키자 안중근은 간도를 거쳐 연해주에 도착, 국외 의병부대인 대한의군(大韓義軍)를 조직하여 참모중장 직책을 맡아 두만강을 건너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함경북도 홍의동과 신아산 회령 등에서 일본군과 3차례나 전투를 벌인기록이 있다.
 
그러나 안중근은 의병부대로 잘 훈련된 일본군대와 지엽적인 전투를 전개하는 것 보다는 일본의 조선침략의 총책임자인 국적(國敵)이등박문을 직접 사살하는 작전이 일본과의 전쟁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99년전 10월 26일, 안중근의 하얼빈 총소리가 단순한 민간인 안중근의 의로운 거사가 아닌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이등박문 제거를 위한 고도의 전략인 '하얼빈의 독립특파작전'이 그것이다.
 
일제가 조선침략을 노골화했던 1909년 안중근은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었다.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뒤 연해주 지역에서 조직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인은 '작전'을 하는 것이지 '의거'를 하지 않는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99주년'이 아니고 '안중근 장군 하얼빈 독립특파작전 99주년'이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작전을 수행한 대한의군 안중근이 사형을 당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기 당당하게 군인의 길을 걸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안중근 의사 보다는 안중근 장군, 하얼빈 의거 보다는 하얼빈 작전으로 호칭을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안중근의 10.26인 10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대강당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99주년 기념식장 입구에 독림운동 단체를 비롯해 각계에서 보내온 추모화환 속에는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 명의의 대형화환이 섞여있었고 기념식장 안에는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한민국 군 관계자들이 매년 열리는 안중근의 10,26 기념행사에 대거 참석하는 것이 정례화 되고 있다는 것은 안중근을 의사가 아닌 장군으로, 하얼빈 의거를 하얼빈 독립특파작전으로 호칭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다.
 
군인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장렬하게 던졌을 경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투철한 군인정신을 높게 평가해 일계급 특진시키는 제도가 있다.
 
안중근 장군 하얼빈 독립특파작전 100주년이 되는 2009년에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정신을 대한민국 군인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안중근 참모중장'을 '안중근 대장'으로 일계급 특진을
안중근의 10,26 기념식장에 매년 추모화환을 보내는 육해공군 참모총장의 이름으로 대통령이나 국회에 건의하는 것이 어떨까? 
100년 만에 안중근을 장군으로 확실하게 대우해 주는 가장 빠른 길이 될 수있기 때문이다.
 
<정광일 / 안중근 청년아카데미 대표>
기사입력: 2008/10/26 [19:55]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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