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안중근, 상해에서 어떤 일이 벌어 졌나?
<안중근 대학> 길원 남태욱 교수의 大韓國人 안중근 강의
 
남태욱 교수
안중근이 상해에서 한 일은 민영익을 찾아 본 일이었습니다. 그럼 민영익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길래 안중근이 그자를 찾아 상해까지 갔단 말인가?
 
민영환하고는 어떻게 다른가? 
민영익은 안의사가 태어나기 19년전 1860년에 태어난 자이니 1905년 당시 45세였습니다.  
고종 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친후 고종 20년에 전권대신(全權大臣)이 되어 미국을 다녀왔으며 우영사(右營使), 군국기무아문협판등을 역임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요새 직책으로 대통령특사, 국방부 무관에  정보부장까지 좋은 자리는 도맡아 누린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자가 갑신정변때는 보수 수구파로 지목되어 개화파에 의해 칼까지 맞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고 병조판서, 이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도 하고 한성판윤  즉 서울특별시장자리에도 있었으니 아마 이만한 벼슬운을 누린자는 고금에 또 없을 것이다.
 
물론 노비근성을 가진 벼슬아치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권의 변동여부에 구애 않고 고관대작을 해먹은 자가 부지기수인 것은사실입니다만.이런 민영익이 지금 상해에 와 있다. 노일전쟁이후 일본을 피해 상해로 피신해 와 있었습니다.
 
우리 안중근의사가 고향을 떠나 해외로 벌걸음을 옮겨 산동과 상해등지에 있는 유력인사를 만나 구국의 방책을 의논함에 있어서 이런 거물급 민영익을 안 만나볼 수가 있었겠나?
 
안중근이 상해에서 민영익을 찾았더니, 뜻밖에도 문지기 하인이 문을 닫고 들이지를 않으며, 하는 말이 "대감은 한국인을 만나지 아니하오"라는 것입니다.     
 
이에 그날은 그냥 돌아 왔다가 다음날 두세번이나 더 찾았으나 여전히 만남을 거절하기에 안의사가 다음과 같이 크게 꾸짖었습니다.
 
"공은 한국인이 되어 가지고 한국사람을 안 만난다면 어느나라 사람을 보는 것인가. 더구나 공은 한국에서 여러대(代)로 국록을 먹은 신하로서, 이같이 어려운 때를 만나, 전혀 사람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베개를 높이 하고 편안히 누워 조국의 흥망을 잊어버리고 있으니, 세상에 어찌 이같은 도리가 있을 것인가.
 
오늘날 나라가 위급해 진 것은, 그 죄가 전적으로 공들과 같은 대관들한테 있는 것이오, 민족의 허물에 달린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굴이 부끄러워서 만나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한참 동안 욕을 퍼 붓고는 돌아와 다시는 더 찾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이 더러운 탐관 모리배놈! 그랬겠지요.
 
그러면 같은 민씨로서  민영환은 어떤 사람인지 한번 비교를 해봅시다.
 
민영환도 민영익과 거의 같은 해인  1861년에 출생했습니다.그에 대해서는 백과사전(학원사간 원색세계백과대사전)에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구한말의 정치가. 우국지사. 서울출생. 1896년 군무대신으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특파되었고, 이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특명공사를 역임하였다.
 
귀국하여 외부, 학부, 탁지부의 대신과 의정부의 참정까지 지냈다. 1898년 독립당을 보호한다는 혐의로 내부대신을 면직하고, 1905년 보호조약이 체결될때 시종무관장으로서 의정대신 조병세와 연명으로 5개 조약을 폐기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아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고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시호는 충정공(忠正公)."
 
이렇듯 민영익은 누가 보더라도 탐관모리배 민가였고 민영환은 우국 애국지사 민충정공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대의 사후에 후손들이 그대에 관해 어떤 기록을 남겨주길 원하시는지요?
 
혹시라도 탐관모리배라도 좋으니 이름없는 무명인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민충정공이 스스로 자결하지 않았다면 우리 안의사가 맨먼저 만나고자 하신 분 
은 민영익이 아니라 민영환공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再見.
기사입력: 2008/08/01 [17:50]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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