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인간 안중근의 신변잡기
 
남태욱 교수
안중근도  여러가지 세상사에 관여했는데, 먹고 살기 위해서도 그랬고, 남의 일 도와 주기 위해서, 의협심에서, 혹은 관리들 비행에 분개한 나머지  정의감에서 여러가지 일에 손을 대었습니다.
 
 일하면서 사건도 많았지요.
 
한번은 금광을 관리하는 주가라는 자가 천주교를 마구 비방하여 교회에 피해가 적지 않으므로, 안중근이 총대로 선출되어 금광으로 가서 그자와 담판을 짓게 되었습니다.
 
안의사가 사리를 들어 질문을 하고 있는데 금광 일꾼 4, 5백명이 제각기 몽둥이와 돌을 가지고 옳고 그른것을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로 안중근을 두들기러 내려오니 그것이 바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형국이었습니다.
 
이에 안의사가 오른 손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아 들고 왼손으로는 주가의 오른 손을 잡고, 큰 소리로 주가에게 꾸짖되 "네가 비록 백만명 무리를 가졌다 해도, 네 목숨은 내손에 달렸으니 알아서 해라"한 즉, 주가가 겁을 먹고 좌우를 꾸짖어 물리치는 통에 위기를 모면했다 합니다.
 
( 이때도 주가를 금방 놓아주지 않고 문밖으로 끌고 나와 10 여리를 동행한 뒤에야 놓아 보낼 정도로 치밀하게 대처했더군요)
 
또 한번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돈벌이 수단으로서 만인계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에 안중근이 사장으로 피선되어 출표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 만인계(萬人契:1,000명 이상의 계원을 모아 돈을 출자한 뒤 추첨이나 입찰로 돈을 융통해주는 모임.안중근은 만인계 채표회사(彩票會社:만인계의 돈을 관리하고 추첨을 하는 회사)의 사장을 했다.]
 
 
 원근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수만명이나 되어 계장 앞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에 1표식 표뽑는 행사가 진행중에 공교롭게도 기계가 고장이 나서 한번에 5,6개의 표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수만 명이 시비곡직은 가리지 않고, 협잡한 것이라 하여 고함을 지르고 돌맹이와 몽둥이가 난무하는통에 파수하던 순검들도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가버리고 안중근사장 혼자만 남고 말았습니다.
 
군중들이 "사장을 쳐죽여라"하면서 안사장을 일제히 공격하여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마침 우리 안사장이 신식 12연발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안중근의 그다음 이야기는 전개될 수가 없었겠지요.
 
안사장이 총을 빼들고 계단위로 올라가 "나는 아무 죄가 없고 기계고장탓인데 그대들이 시비곡직도 가리지 않고 소란을 피우고 난동을 부리니 세상에 어찌 이같은 야만의 행동이 있을 것이냐. 나는 결코 죄없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나와 더불어 목숨을 겨룰자가 있으면 누구든지 쾌히 앞으로 나서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무리중에서 어떤 건장한 사람이 비호같이 물살헤치듯이 무리를 헤치고 달려나와 안사장을 보고 왈, "너는 사장이 되어가지고 수만명을 청해다 놓고는 이렇게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냐. 어서 그 총을 치우지 못할까!"
 
 이렇게 대드는데, 안사장이 그사람의 됨됨을 보니 과연 일대영웅이라 할만했습니다.
 
 안사장이 단아래로 내려가 그자의 손을 맞잡고 영웅간의 교분을 언약하고 그자 덕분에 군중을 진정시킨 연후에 식을 계속거행하여 무사히 끝마치게 되었다 합니다만 그 영웅이 성은 허씨요 이름은 봉이라는 것과 함경북도 사람이란 것 말고는 그 뒤의 행적은 묘연합디다.
  
      
그무렵 두 가지 사건이 또 있었는데, 황해도 옹진 군민이 돈 5천냥을 경성에 사는 전 참판 김중환에게 빼앗긴 일과, 의사 이경주란 자가 해주부 지방 대병영의 위관 한원교에게 아내와 집과 세간살이를 빼앗기고 자기집에서 내쫓긴 신세가 된 사건입니다.
 
옹진군민이나 이가 모두 천주교회에 다니던 사람이라, 이때도 우리 안의사가 총대로 뽑혀 두 사람들과 함께 상경하여 두가지 일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김중환을 찾아가  보니, 귀한 손님들이 한방 가득히 앉았는데 그 분위기 하며 좌중이 안중근을 보는 시선이 어떠했을지는 궂이 말을 안해도 짐작이 가리라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안의사가 국가와 백성과의 관계 및 관리의 도리를 들어 김중환을 힐난한 끝에, 김이 몇달 뒤 5천냥을 갚아주겠으니 너그러이 용서를 구한다는 말을 너댓번이나 하면서 애걸하는 통에 날짜를 정해서 물러 나왔다는것만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이경주대 한원교사건은, 애석하게도 한원교가 도리어 이경주를 무고로 고발하여 죄없는 이원교가 감옥에서 3년징역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안의사의 부친이 위독하여 안의사가 경성을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에 안의사의 그당시 심정을 자서전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
시절이 한겨울 추운 때라, 천지에 흰눈이 가득하고 하늘에는 찬바람이 불어쳤다. 독립문 밖을 지나면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친구가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혀 겨울날 차거운 옥 속에서 어찌 그 고생을 당하는고 싶어서 였다.
 
더구나, 어느날에나 저같이 악한 정부를 한 주먹으로 두들겨 개혁한 뒤에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쓸어버리고 당당한 문명독립국을 이루어, 명쾌하게도 민권자유를 얻을 수 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피눈물이 쏫아올라 발걸음을 옮겨 놓을 수가 없었다"
 
 
1년뒤 이경주는 사면을 입어 풀려나오긴 했으나, 한가에게 외딴곳에서 칼에 찔려죽었다 하고,  마침내 이경주의 아내는 법률에 의해 처형되었으나 한가는 끝내 도망을 가고 잡지못했다 합니다.
 
이런 몇가지 사건으로만 미루어 보더라도 그당시 각 지방 관리와 백성의 사이가 얼마나 서로 원수지간처럼 여겨졌겠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천주교도들은 포악한 명령에 항거하고 토색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리들이 교인을 미워하기를 외적(外敵)과  다름없이 하였다 하더군요.
기사입력: 2008/08/01 [17:44]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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