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안중근 뿔다구 났다
 
남태욱 교수
지금까지  안중근의 열정 가득한 선교 연설을 연속적으로 들었습니다만,그 말을 다 믿는 자도 사람들도 있었고 반신반의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기나 말기나 우리 안중근 청년은 참 착한 신자였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이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고 주님 친히 말씀을 내려 주실 만한 분이었습니다.
 
천주교에 깊이 빠져 안중근은 신부를 하늘같이 여기고, 교회의 교계제도를 절대적 권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만큼 교회에 대한 신뢰심이 순진할 정도로 컸던 거지요.
 
본격적으로 깊이 있게 원어를 통해 교리를 습득코자 홍신부에게서 프랑스어도 몇달 동안 열심히 배우고, 어떻게 하면 이 천주교 교리를 우매한 우리 동포들이 효과적으로 받아들여 무지몽매에서 벗어나게 해 줄것인가에 골몰했습니다.
 
민족의 계몽을 천주교 보급을 통해 성취하고자 했던거지요. 그래서 안중근이 하루는 홍신부와 의논하여 " 지금 한국 교인들이, 학문에 어두워서 전도하는데에 손해가 적지 않은데, 하물며 앞날에 국가 대세야 말하지 않아도 알 만 합니다. 민주교(뮈뗄주교)에
 
게 말씀해서 서양 수사회 가운데서 박학한 사람 몇을 청해 와서 대학교를 설립한 뒤에, 국내에 재주가 뛰어난 자제들을 교육한다면, 몇 십년이 안가서 반드시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하고 홍신부를 설득했습니다.
 
이에 홍신부의 승락을 얻어 둘이 함께 곧 서울로 가서 민주교를 만나 그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민주교 왈, " 한국인이 만일 학문이 있게 되면, 교 믿는 일에 좋지않을 것이니, 다시는 그런 의논을 꺼내지 마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안의사가 두번 세번 권고했으나 민주교 끝내 들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어 본향으로 돌아 오게 되었는데, 그때 안의사의 비분비통한 심정은 필설로 다 형언하기가 어려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감, 믿었던 도끼에 발찍힌 심정,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자식 마음, 우정의 댓가가 원수로 돌아온 격, 간신에 모함당한 충신의 허무함... 아마 이 모든 것이 종합된 만큼의 허무와 분노 격정과 냉소가 안의사를 사로 잡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번개입에다 즉흥적인 행동으로 싸움질도 잦았던 다혈질의 안의사가 얼마나 분개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지 않습니까?
  
 
그로부터 안의사는 마음속으로 맹세하되, "교의 진리는 믿을 지언정, 외국인의 심정은 믿을 것이 못된다"하고, 프랑스말 배우던 것도 걷어 치우고 말았다.
 
 벗이 그 이유를 물으니, " 일본말을 배우는 자는 일본의 종놈이 되고, 영어를 배우는 자는 영국의 종놈이 된다. 내가 만일 프랑스말을 배우다가는 프랑스 종놈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그만 둔 것이다. 만일 우리 한국이 세게에 위력을 떨친다면 세계 사람들이 한국말을 통용할 것이니 그대는 걱정하지 말게"라고 답했다 합니다.
 
유식한 표현 걷어 치우고 쉬운 말로 하자면,  이 개놈의 새끼들, 프랑스고 "ㅣ" 이고 주교고 나발이고 늬들끼리 잘 묵고 잘 살아라-- 이겁니다.(욕을 해서 미안합니다. 아, 기분 나쁜데 낸들 욕이 안나오게 됐심까 !! )
 
필자가 중학교때 일입니다. 봄소풍을 앞산 안지랭이로 갔는데(지금은 집이 다 들어서 있지만 그때는 산의 계곡을 끼고 오솔길 들판이 잘 어우러진 곳이었지요), 거기서 상급생들 두명한테 몰매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오솔길을 따라 위에서 내려오고, 그놈들이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지요. 한놈이 "야 길 비끼라" 하길래, 순진한 내가 "옆으로 오면 되겠네"했지요. 그러자 그 녀석이  "야 이새끼 봐라"하고는 주먹이 내 면상을 쳤는데 내가 그만 정신이 어릿해지더니 어디서 옆발차기가 들어오고 또 주먹인지 뭔지가 들어오고... 그런 와중에 내가 완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습니다.
 
나중에 정신이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없더군요. 온몸이 쑤시고 아린데..., 그때 내 마음에 괘씸한 생각이 여러가지가 들었습니다.  친구놈들이 더러 있었는데 아무도 날 도와 주지 않았다는 것과, 나를 친 놈들이 학교 선배란 단 한가지 이유로, 정당하게 길을 걷고 있는 타인을 부당하게 집단구타를 했다는데 대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겁니다.
 
 
그뒤로 나는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제 아무리 공부잘하고 모범생이라도 힘없으면 이처럼 불량배에게 얻어 맞는다, 나자신 말고는 아무도 남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저희들도 안 다쳐야 하니까, 국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국력이 약하면 나처럼 당하고 말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자주 자강 자애정신이 나자신의 평생의 사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중2때부터 유도를 연마하고, 태권도, 합기도에 복싱폼도 잡고.. 어떻게든 내 몸 내가 지켜야 겠다는 일념으로 말입니다. 지금의 무와 무인정신은 순전히  그때 내가 당한 불의의 공격 덕분입니다.
 
(지금은 돌이켜보면 그때 나를 때린 그 선배 녀석들이 고마운 분들이고 기절하도록 버려둔 친구들이 고마운 친구들이 된 셈입니다)
 
아! 우리의 안의사님! 그 비분 비통의 심정을 저는 좀  이해 할 만합니다. 그 뒤로 분명 안의사는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떤 변모를 가져 왔는지 또 다음번에 알아봅시다.
기사입력: 2008/08/01 [17:39]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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